웨스트 할리우드 시, ‘무빙 이미지 미디어 아트(MIMA)’ 전시 시리즈의 새로운 아티스트 및 작품 라인업 공개
웨스트 할리우드의 상징적인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가 거대한 디지털 캔버스로 탈바꿈한다. 2026년 6월 1일 월요일부터 9월 30일 수요일까지, ‘무빙 이미지 미디어 아트(MIMA)’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시가 매시간 정각마다 일상을 파고들 예정이다. 여덟 명의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정체성, 환경, 그리고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다층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자아와 세계의 얽힘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다. 8497 선셋 대로(The Now) 빌보드에서 상영되는 Yozmit The Dogstar의 «Stairways»는 파리 아트리움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무언의 퍼포먼스를 담았다. 거울처럼 마주 본 두 형상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자아 통합을 향한 갈망과 유동적인 정체성을 시각적 은유로 묵직하게 풀어낸다.
이어지는 8501 선셋 대로(Sun Cienega)에서는 Clarissa Tossin의 «Streamlined: Belterra, Amazônia / Alberta, Michigan»이 선셋 대로의 속도감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킨다. 1935년 포드 모델 T 생산을 위해 세워진 브라질 아마존과 미시간주의 두 기업 도시를 병치한 이 딥틱(diptych) 영상은, 추출 경제가 남긴 글로벌한 상흔을 관조하게 만든다. 반면 8730 선셋 대로(The Whorl)의 매시간 정각과 30분에 등장하는 Alison O’Daniel의 «Hand Shapes and Scene Numbers»는 농인(Deaf) 아티스트 Christine Sun Kim이 영화 The Tuba Thieves의 씬 넘버를 수어로 표현하는 모습을 담았다. 채색된 왼손과 흑백 영상의 충돌은 시각을 통해 소리를 재고하게 만들며 감각의 위계를 뒤흔든다.
신화가 된 풍경과 포스트 인류세의 초상
미국적 풍경을 다루는 방식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Greg Jenkins의 «Motor Moter Blue (Recline)»(8743 선셋 대로, Invisible Frame)는 자동차 경주가 휩쓸고 간 안개 낀 애팔래치아의 버려진 풍경을 훑으며 환경적 취약성과 잊힌 미국적 신화를 반추한다. 반면 Luciana Abait의 «LAND»(8775 선셋 대로, Sunset Spectacular)는 익숙한 대지를 채도 높은 색채와 천체 모티브로 비틀어, 팍팍한 도심을 걷는 이들에게 우리가 발 디딘 행성과의 연결고리를 잠시나마 상기시킨다. 모하비 사막을 배경으로 한 Monroe Isenberg의 «Harbinger» 역시 빛과 바람, 거울과 가시로 뒤덮인 퍼포머들의 안무적 대화를 통해 연약한 생태계 속 인간의 이주와 적응을 그려낸다.
기술과 에너지를 향한 도발적인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9015 선셋 대로(Rainbow/Roxy)의 «Power Trip»에서 Katya Ivanova는 글리치 아트가 섞인 타로 이미지와 맥박 치는 기타 사운드를 통해 전기를 생명력이자 문화적 엔진으로 해석한다. 이는 과거 전기적 반항의 성지였던 레인보우와 록시의 유산과 기묘하게 공명한다. 한편, 이전 전시에서 불가피하게 연기되었던 Richard Mapes의 «Lucid Dream»(8901 선셋 대로, Whisky A Go Go)은 마침내 그 베일을 벗는다. 민속적 데이터와 인프라 논리가 뒤섞인 글로벌 AI가 세상을 통제하는 이 포스트 인류세의 실시간 렌더링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예술의 기원을 향한 시선: 텐트 안의 어린 창조자들
압도적인 스케일의 미디어 아트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수놓는 동안, 이 모든 거대한 창조적 에너지의 ‘시작점’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싹트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주 토요일 오후, 레드랜즈 예술 축제(Redlands Festival of Arts) 한편에 마련된 유스 아트 엑스포(Youth Art Expo) 텐트는 자신의 작품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어린 예술가들의 묘한 긴장감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이 행사의 공동 조직위원장 Annette Weis는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창조적인 존재”라며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1964년 레드랜즈 미술 협회를 설립한 Margaret Clark 교수 역시 이 같은 본연의 창의성을 굳게 믿었다. 그녀의 철학은 마가렛 클라크 예술 교육 강화 기금(MCAEEF)으로 이어져, 매년 두 차례 열리는 고전 영화 시리즈 수익금을 통해 지역 학생들의 전시회와 장학금을 묵묵히 지원하고 있다.
대형 빌보드의 화려한 픽셀 대신, 아이들은 연필과 찰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빚어낸다. 이번 엑스포에서 최고상인 MCAEEF 특별상을 거머쥔 레드랜즈 이스트 밸리 고등학교 9학년 Brooklyn Purvis는 섬세한 흑연 명암 묘사로 «Mechanical Jellyfish»를 탄생시켰다. “예술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원하는 건 뭐든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그녀의 당찬 소감은, 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서부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가진 원초적인 갈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매체의 확장, 식지 않는 창작열
주목할 만한 점은 어린 세대 사이에서도 매체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치원생부터 12학년까지 총 142명의 학생이 참여한 올해 전시에서는 3D 아트와 조각 출품작이 눈에 띄게 폭증해 주최 측이 3D 부문을 부랴부랴 신설해야만 했다. Weis 위원장은 고학년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진 것과 3D 부문의 뛰어난 작품 수준에 짙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어쩌면 예술이란 대단한 거대 담론 이전에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일 테다. 유치원~2학년 부문 2위를 차지한 세이크리드 하트 아카데미 2학년 Abigail Rivera가 “다양한 색을 섞는 게 그저 재미있다”며 선생님의 과제에서 영감을 받아 «House on the Hills»를 그렸듯 말이다. 딸의 학교에 따로 미술 전시회가 없어 이번 엑스포가 더욱 설렜다는 어머니 Alexandria Rivera의 미소는 커뮤니티 예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거대한 디지털 폭포가 쏟아지는 할리우드의 밤거리와, 이제 막 물감을 섞기 시작한 아이의 서툰 도화지. 겉보기엔 전혀 다른 궤도를 도는 듯하지만, 결국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에서는 완벽하게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다음 세대의 선셋 대로를 장식할 비전이 어쩌면 지금 저 레드랜즈의 텐트 안에서 조용히 연필을 깎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