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의 무게와 거리의 자유: 오디션 공화국이 잃어버린 것들

숫자와 논란에 갇힌 서바이벌의 씁쓸한 뒷맛

MBN ‘불타는 트롯맨’의 최종 우승 트로피는 결국 손태진의 품으로 돌아갔다. “노래하는 인생의 책에서는 이제 막 소개글을 넘겼을 뿐”이라는 그의 우승 소감은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만큼이나 묵직했다. 매 경연을 거치며 차곡차곡 쌓인 6억 2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 역시 그에게 주어졌다. 2위 신성부터 민수현, 김중연, 박민수, 공훈, 에녹이 그 뒤를 이으며 톱7의 자리를 채웠지만, 대중의 시선은 묘하게 싸늘했다.

TV조선 시절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으로 대한민국을 트로트 열풍에 빠뜨렸던 서혜진 PD가 독립 후 야심 차게 내놓은 이 프로그램은 초반만 해도 승승장구했다. 첫 방송부터 비지상파 유료가구 기준 시청률 8.3%를 찍으며 MBN 역대 예능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황영웅이 과거 폭행 전과와 학교폭력 의혹 등 끝없는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오디션 생태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비판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자 1차전 1위를 차지했던 황영웅은 결국 자진 하차를 택했다. 결승전이라면 응당 자체 최고 시청률이었던 16.6%(10회)를 훌쩍 넘겨야 정상이건만, 최종회는 1부 14.8%, 2부 16.2%, 3부 15.6%라는 미지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담보하던 참가자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생명인 공정성과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혔고, 팬덤의 불만까지 터져 나오며 우승자가 가려지는 축제의 장은 이례적인 촌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무대를 탈출해 한강으로 쏟아져 나온 스텝

이런 과열된 경쟁과 상업화, 그리고 증명의 압박은 비단 트로트 판에만 드리운 그림자가 아니다. K팝과 방송 매체가 스트릿 댄스를 주류 문화로 끌어올리면서, 댄스 씬 역시 묘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신드롬 이후 춤은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되었고, ‘광주 배틀 라인업’이나 ‘레드불 댄스 유어 스타일’ 같은 굵직한 대회들은 국내외 댄서들을 끊임없이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씬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댄서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하고, 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스포트라이트가 밝아질수록 춤이 가진 원래의 날것 같은 즐거움은 거울로 둘러싸인 스튜디오 안에 갇혀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선선한 바람이 불던 토요일 오후, 반포 한강공원에서 벌어진 풍경은 지금 우리 대중문화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정확히 찌른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댄서들은 차례대로 원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동료들과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스킬을 뽐냈다.

올해 6월 6일 열린 ‘한강 잼(Hangang Jam)’의 모습이다. 2023년 론칭해 벌써 6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춤을 좁은 스튜디오나 숨 막히는 경연장 밖으로, 다시 대중의 일상 공간으로 끄집어내려는 젊은 댄서들의 작은 반란이다. 오픈 프리스타일 세션으로 문을 연 이날 행사에는 사전 등록자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도 스스럼없이 춤판에 끼어들었다. 이후 기획자들이 준비한 팀 배틀이 이어졌지만, 분위기는 치열함보다는 유쾌함에 가까웠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댄서와 관객의 경계가 놀라울 정도로 얇다는 것이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몇 시간씩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는가 하면, 참가자들과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고, 심지어는 일반 대중이 배틀의 심사위원으로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지난 3년간 댄스 커뮤니티 계정 ‘온릿(Onlit)’을 통해 이 판을 벌여온 기획자 겸 댄서 권유경(27)의 말은 명쾌하다. 그녀는 그저 탁 트인 곳에서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친구들과 춤을 추고 싶었다고 말한다. “스튜디오도 좋지만, 때로는 성장해야 한다는,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기만의 기준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잖아요. 거울도, 화려한 조명도 없는 이곳에선 내 부족한 점을 뜯어보기보단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6억 원의 상금과 1위 타이틀을 지키려다 과거의 족쇄에 발목을 잡혀 무대를 잃었지만, 한강 변의 이름 없는 댄서들은 그저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든다. 춤을 춰도 되는 사람의 자격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며, 막상 음악이 켜지면 주저하던 사람들이 제일 신나게 논다는 그녀의 웃음 섞인 말. 결국 음악도, 춤도, 그 시작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